공원 벤치에서 카즈키가 느리게 눈을 떴을 때, 곁에는 이츠키가 앉아있었다. 어디도 손상되지 않고 말끔한 모습의 동생이 카즈키를 본다. 모자의 그림자 아래에 숨어 자는 척 눈을 감았다. 시선은 거둬지지 않은 채 계속 카즈키의 얼굴에 머무른다. 이미 눈치 챈 게 분명했다. 최악의 아침이군. 잠이 덜 깬 것처럼 멍한 머리로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왜 여기 있어?" 카즈키가 그렇게 물으면,
"그게 첫 마디야?" 이츠키가 어이없다는 듯 그렇게 대답한다.
죽인 사람과 죽은 사람의 재회가 이렇게 빠른 건 뭔가의 법칙에 위배되진 않나. 그런 항의를 하기엔 이곳은 이미 거짓말 같은 도시다. 남색의 하늘. 무너지지 않은 건물들. 죽은 사람들의 마음을 달래듯 모든 것이 조용하고 평화로운 오오하타케 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도시는 이런 모습이었던가. 5년의 기억이 거짓말처럼 낯선 풍경으로 다가온다. 카즈키는 자세를 일으킨다.
"그 꼴이 나고도 날 기다릴 기분이 들다니 비위가 대단하네…….”
"솔직히 말해줘? 지금 형 얼굴 보기 좀 싫어."
"……눈이라도 감든지."
"그래봤자 소용 없잖아."
“왜 소용이 없어.”
"그래서, 이긴 거지?"
"응."
"역시 세상을 지배하는 건 게임인가…… 나도 게임이나 할걸."
"넌 앞으로 20년동안 게임만 해도 나 못 이겼어."
"괜히 기다렸네. 만나자마자 이런 소리나 듣고."
그리고 대화가 끊긴다. 부자연스러운 정적이다. 답안을 끼워넣어야 하는 공란처럼. 이곳에는 바람이 불지 않는 것만 같다. 영원히 밤일 것 같고, 아무리 사람이 늘어도 쓸쓸할 것 같다. 여생이라는 말을 쓰기에도 이상한 유예의 시간을 파일럿들은 이곳에서 보내야 한다. 아무래도 말을 해야 하는 게 자기쪽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카즈키는 중얼거리듯 말한다.
"가도 돼."
어쩌면 28년 동안 하고 싶었던 짧고 시시한 말.
"또 마주칠지도 모르지만. 모른 척 해도 되고."
작은 케이지 같은 하나의 도시는 그래도 사람 한 두 명이 마주치지 않을 수 있을 정도로는 넓다. 그도 그럴게 이곳의 파일럿들을 2주 전에야 처음으로 알게 되지 않았는가. 그 짧은 기간동안 알게 된 정보량은 이례적이었지만 이제 그럴 필요도 없었다. 영영 엮일 일이 없으면 좋겠다는 인사를 한 번 했던가. 그건 나쁘지 않은 인사였다. 노력의 여지도 있었다. 이츠키는 카즈키를 가만히 본다.
"그냥 왔다갔다 할게."
"……그거 지금 내 말에 대한 답이야?"
"응. 폼 잡는 거 보니까 왠지 짜증나서."
"다들 너 보고 착하다는데 너도 어지간한 거 알지."
"형한테만 그래. 다른 사람들한텐 잘 할 거야."
"다들 좋은 사람 같아보이더라…… 우리 진짜 나쁜 짓 한 거야. 알지." 동생이 그렇게 말하면 카즈키는 대답하지 않는다. 습관적으로 주머니 안에 손을 넣었다가 여전히 스마트폰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스마트폰을 꺼내면 간편하게 시선을 둘 곳이 마련된다. 검은 화면에 카즈키 자신의 모습이 비친다. "알 게 뭐야. 세상도 구해줬는데 감사는 못할 망정." "그런 말 절대로 하지 말고." 유감스럽게도 카즈키는 제법 진심이지만, 그런 말이 통하지 않으리란 예감은 있다. 기울어진 안경 너머로 상처 받은 얼굴들을 본 기억이 남아있었다. 이런 건 다른 세계로 보낼 때 서비스로 지워줘도 되지 않나. 그러나 모니터에게 그런 복지까지 받는 건 그것대로 자존심이 상했다. 시시한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동안 이츠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려고?"
"응. 지낼 집은 형이 찾아둬. 여기 지리는 모르니까."
몸에 시동을 걸듯 이츠키가 기지개를 켜면 기모노의 소맷자락이 흘러내린다. 그는 곧 저 너머에 두고 온 것들을 떠올릴 것이다. 잃어야만 했던 것들의 가치가 머릿속에 불이 켜지듯 차차 쌓일 것이다. 살해당한 본인도 자신의 죽음으로 슬퍼하는 사람들의 몫까지 용서할 수는 없다.
“나중에 봐. 연락할 테니까."
그래도 이츠키는 그렇게 말하고 걸음을 옮긴다. 카즈키는 익숙한 벤치 위에 혼자 남는다. 언제나 이 위에 있던 가로등 불빛은 위태롭게 깜빡거렸는데, 지금은 고쳐진 것처럼 잔잔했다. 화 내고 있었지, 다들. 마주치면 한 대 치기라도 하려나. 심볼 인카운터형 게임이 따로 없다고 생각하며 카즈키는 거기서 미적미적 시간을 흘려보낸다. 말하자면 욕 먹을 마음의 준비를 하는 시간이다. 오래 걸리진 않았다. 어차피 그에겐 익숙한 일이다. 스마트폰도 보지 않고, 그저 가만히 앞에 놓인 풍경을 보던 카즈키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그대로 낯선 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