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오하타케 시에 주민 등록을 한 지 5년 가까이 되었지만 시립 도서관에 가는 건 처음이었다. 그 탓에 도서관 카드를 만드는 것부터 시작해야 했다. '반납은 2주 후까지 부탁드려요. 따로 예약이 없으면 한 번까지 인터넷으로 연장 가능하세요.' 직원이 친절한 미소와 함께 〈호돌이의 모험〉을 카즈키의 손에 돌려주었다. 오래 들고 있고 싶은 책은 아니었기 때문에 카즈키는 지체 없이 도서관을 나왔다. 이런 걸 읽어줄 나이면 몇 살일까. 다섯 살? 여섯 살쯤? 카즈키는 다섯 살짜리 어린 아이가 얼만한지도 모른다. 다만 침대에 얌전히 누워있는 아주 어린 마히루를 상상해볼 뿐이다. 잠을 방해하지 않을 정도의 작은 조명을 켜둔 아이의 방. 얼굴도 모르는 남자의 낮은 목소리가 아이도 알아들을 수 있을 만큼 천천히 문장을 읊는 장면을.
"안에 편지가 있는데 주소가 여기길래요."
현관문이 열리고 책을 받아 든 건 여자였다. 슬픔으로 탈진한 사람의 얼굴이었다. 마히루가 봤다면 바로 울먹였으리라. 여자의 손이 카즈키가 서있는 것도 잊고 책을 펼쳐본다. 눈에 보일 만큼 손이 떨리고 있었다.
"잠시…… 안으로 들어오시겠어요? 괜찮으시다면……."
그들은 편지를 펼치기 전에 먼저 카즈키가 마실 차를 내올 정도로 예의 바른 부부였다. 딱 세 사람이 살기에 욕심부리지 않은 크기의 거실에서는 녹차 향이 가려질 만큼 진한 향 냄새가 났다. 남자와 여자는 한참을 울었다. 카즈키에게 사과하면서도 울었고, 마히루에게 사과하면서도 울었다. 조금 진정이 되었을 쯤에 남자는 이 책을 어릴 때 딸에게 자주 읽어주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 딸이 얼마 전에 죽었다는 말도. 카즈키는 그저 가만히 그 말을 들었다. 그들이 죽은 딸의 편지라고 믿고 있는 것은 마히루의 작문 숙제를 보며 적당히 따라 그린 카즈키의 글씨였다. 편지지와 편지 봉투를 고른 것도 마히루가 아니다. 그래도 그들은 그 종이 위에 담긴 게 딸의 문장이라는 걸 믿어 의심치 않았다.
"죄송합니다.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서……."
"아닙니다. 괜찮으시면 향을 올려도 될까요."
"……그래주신다면 감사해요."
카즈키는 불단 앞으로 가서 가만히 무릎을 꿇는다. 불단에는 마히루의 사진이 올려져 있다. 아직 어색해 보이는 교복 차림에 꽃다발을 든 모습. 긴장한 얼굴이지만 카메라 너머의 누군가를 향한 신뢰가 어려있었다. 그들과 첫 시작의 기쁨을 공유하고 있다는 믿음. 양초가 켜져 있었기 때문에 카즈키는 향을 하나 집어 불꽃에 선향의 끝을 대었다. 반쯤 재가 되어 기울어진 두 개의 향 옆에 새로 타들어가는 향이 세워졌다. 선향의 연기는 죽은 사람의 양식이 되고 산 사람의 마음을 부처에게 전한다고도 한다. 그 애의 영혼이 묶여있는 곳을 안다고 카즈키는 말하지 않는다. 그가 조심스레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리로 돌아와 찻잔을 비우고, 몇 마디 더 마히루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후에 시계를 확인했다.
"죄송하지만 일이 있어서 이만 가보겠습니다. 차, 감사드려요. ……몸 조심하시고."
"가시는군요. ……저희야말로 감사합니다. 전해주셔서……."
그렇게 말하는 동안에도 그들은 편지를 놓지 않았다. 몇 번이고 고개를 숙이는 부부에게 카즈키도 가볍게 목례를 하고 집을 나왔다. 점퍼에 향 냄새가 배어있었다. '아예 절 잊어버리셔도 좋을 것 같아요…….' 그렇게 말하는 목소리를 기억하는 게 아이다 부부가 아니라 카즈키여서 다행이었다.
#2
"연락도 없이 찾아와서 죄송합니다. 연락처를 몰라서."
"아뇨…… 괜찮습니다. 전해주실 물건이 있다고 들었는데."
이케다 히로시의 새 아버지는 아이다의 부모와는 다른 방향으로 피곤해보였다. 장례와 수술. 어떤 의미로든 예민해질만한 시기였다. 그러나 아이의 미래를 상상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그에게는 한 고비를 넘긴 사람의 안도가 보였다. 카즈키는 슈이치에게 부탁받은 것을 꺼내 남자에게 보여준다. 남자는 조용히 사진을 보았다. 그게 어떤 의미를 갖는 물건인지 이해한 표정이었다. 사진을 받아드는 대신 남자는 병실의 문을 열어주었다.
"저는 잠깐 자리를 피하는 게 좋겠군요. 이야기가 끝나면 불러주세요……."
카즈키는 홀로 병실 안으로 들어간다. 이미 갑작스러운 방문자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졌는지 히로시는 카즈키를 보고 놀라지 않았다. 수술을 받은 지 며칠 지나지 않은 몸이 피곤한지 가만히 누운 채로 카즈키를 올려다본다. 그 까만 눈 안에 들어있는 슬픔과 기대가 부담스러웠다.
"……아빠랑 아는 사이세요?"
"응."
자리에 앉지 않은 채로, 카즈키는 들고 있던 사진을 이불 위에 내려둔다. 닿으면 사라질 물건에 손을 대는 것처럼 어린 손이 조심스레 사진을 집어든다. 놀라움이 지나가는 듯했던 까만 눈은 울 것처럼 일그러지면서도 울지 않는다. 아무런 기대 없는 동작으로 사진을 뒤집을 때까지는 그랬다. 아이가 울기 시작했을 때, 카즈키는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돌아오지 못하는 길을 여행이라고 부르는 건 고등학생에게 통할 만한 수법이 아니었다. 슬픔이 작은 몸 안에 다 담기지 않아 그 애는 이불을 그러쥐어야 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사진만은 구겨지지 않게 조심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아빠가…… 제 이야기 가끔 했어요?"
"자주 했어."
"무슨 이야기?"
"……그냥. 너 보고 싶다고."
"그럼 보러 오지." 울먹이면서 중얼거리는 목소리를 들으며 카즈키는 주머니에 손을 넣는다. 어차피 해줄 수 있는 말은 없다는 걸 알았다. 그는 명함 하나를 마저 이불 위에 내려두었다. 아이의 시선이 그쪽으로 옮겨간다.
"퇴원하면 여기나 가보든지. 너희 아빠랑 갔던 데야. 맛 괜찮더라……. 비싸니까 생일이나 특별한 날에 가자고 해."
명함에는 레스토랑의 주소가 적혀 있다. 병원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다. 그 날 명함을 챙겨갔더라면 두 번 가는 수고는 없었을 것이다. 카시라타카의 몫까지 사느라 지출도 꽤 있었다. 역시 받은 것보다는 준 게 많다. 빚이라고 불러봤자 값은 받아낼 수 없다. 죽은 사람들에게는 아무 것도 없으니까. 카즈키는 빨갛게 부은 눈으로 사진에서 눈을 떼지 않는 아이를 바라보았다. "가볼게요." 병실의 공기를 마시며 죽음을 생각하고 큰 아이들은 이런 표정을 짓는 걸까. 카즈키는 떠날 준비를 한다. 아이와 아빠, 둘만의 시간에 끼어들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3
'행복을 빌며, 시라유키 마나코…….'
병실 안에 두 사람 중 누구의 것도 아닌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여자는 아직 여러 개의 관을 팔에 꽂고 있었다. 소리를 완전히 끈 TV에서 아나운서들이 입을 벙긋이며 오오하타케 시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오랫동안 말한 적 없는 목은 끊어질 것처럼 작은 목소리로 가만히 말했다.
"쥰의 목소리를 닮았네요……."
"그 사람 목소리니까요."
"……하지만 시라유키 마나코라는 이름은 처음 들어요."
"당신이 깨길 기다린다고 지은 가명이랬나…… 그쪽이 백설 공주…… 를 닮았다고. ……."
한숨을 쉬고 싶은 걸 카즈키는 간신히 참아낸다. 이런 낯간지러운 순간까지 견딜 각오를 하고 온 건 아니었다. 여자는 소리 내서 작게 웃었고, 어느 순간부턴가는 웃음과 흐느낌 사이의 경계가 허물어졌다. 여자의 울음 소리가 잦아들 때쯤에야 카즈키가 조용히 말한다. "녹음 파일은 보내드릴게요." "네, 감사드려요……." 여자의 연락처로 파일을 전송한 카즈키가 짧게 그녀의 이름과 사진을 바라본다. 아키. 마나코가 그녀를 그렇게 부르던 걸 기억하고 있었다. 여자는 고개만 움직여 창밖을 바라보았다.
"자는 사이에 6월이 벌써 지나버렸네요. 몇 번이나……."
아마 누워있는 여자보다는 곁에 서있는 카즈키에게 바깥의 풍경이 더 잘 보일 것이다. 이제 여름보다는 가을에 가까운 날씨였다. 푸르렀던 것들이 나무에서 떨어져 바닥에 쌓이는 계절이 온다. 6월이 두 사람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카즈키는 모른다. 앨범 안에 담긴 사진도. 그들의 추억도. "나가면 저도 사진을 찍어야겠죠…… 아직 앨범이 완성되지 않았으니까." 그 말에도 카즈키가 대답할 필요는 없었다. 여자는 이미 마음을 굳힌 모양이었다. 이제 몸이 따라주기만을 기다릴 생각인 것처럼 보였다.
"그 사람 이름이나 물어봐도 될까요. 아직 가명밖에 몰라서."
카즈키의 말에 여자는 창밖을 보면서도 가만히 손끝으로 앨범의 표지를 쓸었다. 옆얼굴로 보이는 여자의 눈이 그리움으로 가늘어진다. 그녀는 소중한 것을 꺼내놓듯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키리시마 쥰이에요."
# ……
병원을 나서면서 카즈키는 사람들의 연락처를 지운다. 그들 중 누구에게도, 빈말로라도 다시 오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두 번 다시 만날 일 없는 사람들에게 하는 선행은 쉬운 일이었다. 유품과 유언을 전해주고, 감사 인사를 받고, 불편한 분위기를 감내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척 거짓말을 하고……. 그들은 카즈키를 좋은 사람으로 기억하리라. 상관 없는 일이었다. 그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와 상관 없이 유게 카즈키라는 사람은 이미 어떤 형태를 이루고 있다. 죽은 사람을 대하는 것도 산 사람을 대하는 것도 피곤했다. 인생의 어느 한 시기에는 바라지 않는 일들을 해야 할 때도 있다는 지루한 격언을 기억했다. 남은 파일럿은 열 명이었다. 이제 정말 두 손 안에 들어오는 숫자다. 선행을 한다고 천국에서 사다리가 내려오지 않고,
'빨리 끝나버렸으면…….'
그런 생각을 한다고 벼락이 내리지도 않는다. 시간은 여전히 지루하고 조급하게 흘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