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기 하나만 가지고 쉘터 밖 세상에 나온 소녀들이 있다. 지금 이곳에도 있지만, 2년 전에도 그런 소녀들이 있었다ー어쩌면 소녀들의 운명이란 이런 식으로 반복되는 것일지도 모른다ー. 필사적인 면역 반응이 무색하게 소녀들은 죽어가고 있었다. 소녀들은 세상의 여백, 관객 없는 폐허에서 노래했다. 가끔은 이 키스로 세상이 끝나도 좋을 것처럼 입을 맞췄다. 소녀들은 정말로 이곳에서 세상이 끝날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두려울 게 없었다. 소녀들은 음악 속에 있었다. 온 세상이 음악이었고, 그들이 음악이었다. 불타는 영혼과 함께 죽어가는 소녀들은 음악 그 자체였다.
그곳에서 카시는. 아니 캐시는 스모모를 생각했다. 여기에 네가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스모모, 나는 이제야 음악을 이해했어. 세상에는 정말로 깨닫는 순간 돌아갈 수 없는 진리란 게 있었던 거야. 우리는 태어났을 때부터 둥근 막에 감싸인 채 살아가고 있었어. 그러다 그게 톡, 하고 비눗방울처럼 터져버리는 순간에…… 그 막이 나만은 살아남을 거란 안쓰러운 착각의 방패에 불과했고 사실은 쉽게, 너무나 쉽게, 우리가 죽을 수 있다는 걸 이해하는 순간에…… 그제서야 진짜 세상을 볼 수 있게 되는 거야. 그 진리를 쏟아내는 유일한 방법이야말로 음악인 거야. 정말이야, 스모모. 믿어 줘. 여기에 와서야 난 진정한 음악을 알았어. 말을 잊은 혀로도 노래하고 부러진 다리로도 춤을 추는 사람들을 봤어. 몸이 너무 뜨거워. 계속 음악 소리가 들려. 나 지금 기분이 정말로 좋아. 지금이라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아. 세상이 얼마나 빠른 속도로 자전하고 있는지 알아? 제트코스터보다 더 빠르게, 몸이 추락하는 순간에도 느껴지는 짜릿함, 아, 죽음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가는 쾌감…… 그리고 있지, 이 모든 건, 우습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맞아, 꼭 펑크 록을 닮았어…….
그러나 캐시가 진정으로 바라던 장면은 이런 말을 스모모에게 전하는 게 아니다. 말을 할 필요도 없이 그저 별이 잘 보이는 폐허의 옥상 위에 무릎을 모으고 나란히 앉아서, 먼지 덮인 바닥을 두려워하지도 않은 채 손을 겹치고, 고개를 돌려 서로의 눈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이해하는 낭만적인 순간을 바란 것이다. 우리는 같은 음악을 듣고 있구나. 그렇게 확신하는 순간 분명 캐시는 용기를 내서 스모모에게 먼저 키스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곳에 스모모는 없다. 왜냐하면 캐시는 이 모든 걸 스모모에게 이야기하지 않았으니까. 탈락했다고 말하고 싶지 않았다. 진정한 락을 찾아 떠나겠다는 말은 더더욱 할 수 없었다. 말 없이 등을 보이고 떠나는 주인공들이 멋있게 보일 나이가 아닌가! 그들은 언제나 승리와 함께 돌아왔고, 캐시는 그 나잇대의 소녀들이 으레 그렇듯 자신이 주인공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멋진 음악이 흐르고, 키스를 하고, 해피 엔딩. 봐, 누구나 좋아하는 사람한텐 멋있게 보이고 싶은 법이잖아……. 언제나 멋있는 건 네 쪽이었으니까. 그래, 넌 정말로 멋있었어. 다정하고, 강하고, 언제나 내 손을 잡아 끌어줬지. 네가 좋았어, 스모모. 지금도 할 수만 있다면 너와 함께……
"있지 캐시. 난 죽음 같은 건 두렵지 않아."
버스가 덜컹거리는 진동이 몸을 흔들면 카시는 그제야 현실로 돌아온다. 바로 앞에 스모모가 있다. 수도로 향하는 버스 안이었다. 그들은 나란히 앉아 있었는데 (심지어 대화를 위해 카시가 스모모의 옆 자리에 찾아와 앉았음에도) 카시는 순간 스모모가 왜 자신의 앞에 있는지 몰랐다. 다인 버스 특유의 먼지 냄새가 나는 커튼은 묶여 있었고, 스모모 뒤의 창문 너머로 폐허의 광경이 스쳐지나가고 있었다. 소녀들의 목소리는 달콤한 재즈와 잘 어우러졌다. 그리고 스모모. 스모모는 무언가 말을, 아주 중요한 말을 하고 있는데,
"정말로 무서운 건 살아가는 거야." 어지러워. 카시는 눈을 비볐다. 물론 카시는 울지 않았고 (정말로!), 그저 고열에 현기증이 났을 뿐이다. 그러나 선명한 시야에 스모모가 담기면…… 이상하다, 스모모는 이렇게 귀여운 아이돌 의상이 잘 어울리는 소녀였던가? 커다랗게 반짝이는 별, 분홍색 리본, 사랑스러운 프릴…… 함께였을 때 우리는 어떤 옷을 입고 있었지. 스모모가 들고 있던 기타는 어떻게 생겼더라. 우리가 같이 골랐던 피크는…… "그리고 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살아." 아니야, 스모모. 제발 말하지 마…….
그리고 눈이 마주친다. 혜성과 혜성이 충돌한다. 눈꺼풀 안쪽에서 별이 반짝이며 터진다. 아라카와 스모모의 눈 속에 있는 것은 또 하나의 진리다. 누구도 세상의 진리가 하나뿐이라고는 말하지 않았던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사랑을 저버리지 않기 위해 산다. 누군가를 슬프게 만들지 않기 위해 견디는 삶이다. 까만 두 눈은 삶의 음악을, 살아서 하는 음악을, 눈부시도록 반짝이는 음악을 속삭이고…… 그제야 카시는 반짝! MEZASE 걸즈의 유니폼이 스모모에게 잘 어울렸던 이유를 이해한다. 그러나 거대한 깨달음의 순간은 벼락처럼 짧게 빛나고 끝날 뿐이다. 한 사람의 세계에 두 개의 진리는 공존할 수 없다. 왜냐하면 하나의 진리는 숲을 태우는 거대한 불이 되어 지금도 다가오고 있으니까. 친구도, 가족도, 집에 있던 사랑스러운 고양이도, 햇살이 내리쬐면 반짝이던 금발, 점심 시간을 알리는 벨이 경쾌했던 학교, 손을 잡고 복도를 달리던 발소리, 수업 시간에 비밀스럽게 마주쳤던 눈빛, 기타의 현과 플라스틱 건반이 서로를 위해 호흡을 맞추던 순간, 그래 우리 음악을 하자, 음악을 하는 거야, 언젠가 최고의 밴드 걸이 되어서…… 그런 추억이 정말로 있었던가? 모든 것은 음악을 위한 연료로 불 속에 던져져 새하얀 재가 되었다. 되어가고 있고, 완전히 그렇게 될 것이다. 그리고 스모모에게는 함께 죽을 사람이 필요하지 않다.
카시는 스모모의 눈으로부터 시선을 돌렸다. 그 대신 그 너머의 창문, 창문 밖의 세상을 봤다. 버스는 수도로 향하고 있다. 그거면 됐어. 다시 스모모를 보면, 이제 괜찮다. 고열. 음악 소리. 숨이 가쁘다. 뜨거워. 심장이 터질 것처럼 벅차오르고, 아, 사랑하는 스모모, 내 마음 속에 흘러넘치는 사랑을 꺼내서 보여줄 수만 있다면…… 안 돼, 이대로는 터져버릴 거야…… 아직은 안 돼.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어." 이 말을 꺼내면서 카시는 또 하나 슬픈 사실을 새롭게 깨닫는다. 널 사랑해, 하지만 우리는 서로 영영 이해할 수 없어. 그 말이 생각보다 로맨틱하지도 특별하지도 않다는 사실.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 가까워지려고 할 수록, 말을 할 수록 단절은 거대한 구멍처럼 두 사람 사이를 갈라놓는다. 카시는 기울어지는 판자 위에 있는 것처럼 철렁하는 기분을 느낀다. 그마저도 순식간에 몸이 떨릴 정도의 쾌감이 되고ー이것이야말로 고장난 머리의 최대 장점이다ー그래서 카시는 웃는 것도 우는 것도 아닌 이상한 표정이 된다. "스모모, 난……." 그리고 그의 나쁜 버릇. 카시는 스모모의 뺨에 뜨거운 손을 가져다 대었다. 이걸로 전부 괜찮아질 거야. 카시가 고개를 기울인다. 입술이 맞닿기 직전이 되어서야 그는 정말로 울 것처럼 보이는데, 사실은 이 키스로 세상이 끝나지 않으리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너무 늦었어." 그리고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으리라는 것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