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혼자 여행을 떠났다가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우리가 막연히 두려워했던 모습으로, 그러나 막연히 그럴 일은 없을 거라고 믿었던 소식과 함께 돌아왔다. 포스터 가족의 집은 웨스트 버지니아에 지어져 있었고 엄마가 예약한 호텔은 뉴욕에 있다고 했다. 시신이 발견된 곳은 펜실베니아 주의 작은 숙소였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에 의하면 발견부터 정리까지 모든 것이 신속하게 이루어졌다고 한다. 경찰은 자살 후 시신의 수습을 부탁하는 엄마의 전화를 받았고, 말리려고 노력했으나, 늦었다. 유서에는 남은 가족들이 살아갈 수 있도록, 우울증 환자가 발휘할 수 있는 최대한의 섬세함이 담긴 문장이 가득히 적혀있었다. 장례식장에서 클라리스는 뉴욕의 호텔에서 야경을 찍겠다던 엄마의 말을 오래도록 생각했다. 믿지 말 걸. 언니가 속삭이듯 중얼거렸다. '결국'이라는 말은 슬퍼서 떠올리지 않으려고 애썼지만 잘 되지 않았다. 

 아멜리아 포스터가 한 발 앞서 삶을 끝마치고 포스터 가족의 네 일원은 남겨졌다. 이곳에서는 편의를 위해, 클라리스를 중심으로 그의 아버지와 언니, 남동생이 남았다고 하자. 그들은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했지만 서로를 사랑했다. 그리고 나머지 세 사람이 자신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이것이 남겨진 포스터 가족을 세상에 붙들고 있는 안전벨트였다. 그들은 언제나 조심스럽게, 그리고 성실하게 서로의 무사를 확인했다. 전화로, 메세지로, 가끔은 직접 만나서 밥을 먹고, 웃어보이면서. 약은 챙겨 먹었지? 다음주 목요일 상담 잊지 말고. 학교에서 별 일 없어? 아빠도 직장에서 너무 무리하지 말아요. 힘든 일 있으면 꼭 말해야 돼. 사랑해. (우리를 떠나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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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날 아침, 클라리스는 몇 번이고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언니에게 다시 한 번 괜찮다는 문자를 보내고 티셔츠 위에 체크 셔츠를 한 겹 겹쳐 입었다. 10월이 된 후로 날씨가 제법 쌀쌀해졌다. 아침에 다녀오려고 했지만 약속이 취소됐으니 조금 느긋하게 움직여도 괜찮을 것이다. 클라리스는 동네에 있는 꽃집에서 작은 조화 꽃다발을 샀다. 꽃의 이름은 몰랐지만 일관되게 우아한 보라색이었다. 엄마는 보라색 옷을 즐겨입었다. 어젯밤 외출에서 돌아오면서 경차에 넉넉하게 기름을 넣어두었다. 시동을 걸면서, 납골당에 가는 길에 긴 터널이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정체된 터널 안을 지날 때면 클라리스는 라디오의 음악을 크게 틀었다. 터널이 무너지는 상상을 하지 않기 위해서. 유명한 강연에 초청된 어떤 우울증 환자는 병증을 억누르기 위해 마음 속에서 끝없이 노래를 부른다고 했다. 규칙적인 리듬, 잘 정돈된 목소리와 조화로운 악기의 소리가 현재를 가득 채우면, 지금 차 문을 열고 밖으로 뛰어내리라는 머리의 명령을 밀어낼 수 있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하루를 더 살아남는다. 

 그리고 재난은 언제나 사람의 사정과 무관하게 쏟아져내린다는 것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잊고 지내기 마련이다. 클라리스 포스터가 살아남은 하루의 남은 절반은 무너진 터널 안에서 다시 시작되었다. 이제 다시 한 번 편의를 위해 시간을 돌리자. 피와 먼지 냄새, 굉음과 비명 소리에 대해서는 터널 안의 모두가 질릴 만큼 잘 알고 있으니까. 지금 사람들은 음악을 듣고 있다. 바흐의 미뉴에트는 삶의 상징이 되지 못했다. 그 대신 빨간 버튼은 선명했고, 떠오른 메세지는 명쾌했다. [이 버튼을 누르면 외부의 누군가가 죽는다.]

 클라리스는 버튼을 누르지 않기로 했다. 그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첫 째. 누구도 타인의 죽음을 선택할 권리가 없다. 이것은 절대적이다. 둘 째. 지금 한 사람을 죽이면 곧 두 사람도 죽일 수 있게 될 것이다. 무리 안의 균열은 언제나 치명적이고, 극한 상황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셋 째. 하나의 죽음은 스물 둘의 죽음에 비하면 작게 보이지만, 결국 죽음이란 지속적인 사건이므로. 하나의 죽음이 주위에 미치는 영향을 클라리스는 알고 있었다. 오로지 그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살아 있다고 바꿔말해도 좋다. 그러니까 버튼 끝에 이어진 사람이 누구든 나는 죽이지 않겠다. 사람들은 서로를 사랑하니까. 엄마가 우리를 아프게 한 만큼 누군가를 아프게 하고 싶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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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터널 안에 있던 사람들이라면 마땅히 그의 선택을 비판할 권리가 있다. 하지만 지금은 다시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자. 어쨌든 버튼을 누르지 않기로 선택한 순간부터 클라리스는 생존자를 위한 세 의자에 앉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생존자의 불문법을 잊지 않았다. 다시 되뇌어야 하는 말은 최선의 노력. 죽을 사람은 살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정말로 노력했다고…… (그러나 결국에는 어쩔 수 없었다고, 그렇게 말할 수 있기를 바랐을지도 모르지만.) 그래서 클라리스 포스터는 거친 콘크리트에 손바닥이 쓸리는 것을 꾹 참는다. 가만히 앉아 기다리지 않을 수 있어서 차라리 다행이었다. 라디오의 음악이 없고, 혀가 얼얼할 만큼 단 도넛이 없고, 가족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살아남는 법을 그는 몰랐지만, 열 아홉 명의 목숨이 걸린 일이라고 생각하면 움직이는 건 어렵지 않았다. 다행히 클라리스의 몸도 솔직하게 생물의 본능을 따랐다. 살고 싶어. 행동해야 해. 눈 앞에 단 하나의 길이 있다. 이 길을 따라가라고 머리가 아닌 몸이 말한다. 그런데, 그런데.

 전등이 깜빡이기 시작한다. 미뉴에트가 흐른다. 머리가 다시 몸을 멈추고 속삭이기 시작해서, 다른 사람들의 말이 잘 들리지 않았다. 머릿속의 목소리가 커질 때에는 현실의 시간도 함께 느려지는 것 같았는데. 저 불빛에는 의미가 있을까? 바닥을 때마침 굴러온 돌멩이에는? 머리가 아파오는 피 냄새에는? 이 모든 것에 숨겨진 의미가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건 나의 오래된 습관일까? 누구도 대답해주지 않는다. 다만 손에는 무거운 콘크리트 조각이 들려 있다. 운전석에 탄 제라드 테이커가 초조한 목소리로 무언가를 말한다. 해야 할 일은 한 가지. 돌아갈 길은 없다. 어떻게든 머리가 아닌 몸의 명령을 따르기 위해 노력한 끝에, 마지막으로 되찾은 몸의 자유를, 클라리스는 손에서 힘을 빼는 데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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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에서 처음으로 진실을 밝히자면, 다시 시작되었다는 말은 정확하지 않다. 우리는 삶이 잔해 위를 굴러떨어지는 돌멩이처럼 나빠지기만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무너진 터널은 완전하다. 무너진 터널은 바뀌지 않는다. 우리는 모두 처음부터 무너진 터널 안에 있었다. 서로가 서로를 지탱하면서. 우리 모두가 외면하지 못할 죽음을 예감하면서. 숨이 끊어진다면 자신이 첫 번째이기를 남몰래 바라면서. 네가 없었다면 죽을 수 있었을 거야. 네가 없었다면 나는 오래 전에 죽었겠지. 그랬다면 정말로 편했을 텐데. 그리고 슬펐을 거고. 또 외로웠을 거야. 사랑하고 지긋지긋한 나의 가족들. 클라리스는 다리를 지지는 끔찍한 고통이 멀어지는 걸 느끼며 생각한다. 우리는, 우리 가족은 두 명의 죽음을 견디기에는 너무나 약했다. 나는 엄마를 이어 그들의 돌이킬 수 없는 균열이 될 것이다. 터널이 무너져 내린다. 어떤 사람들은 두 번의 붕괴를 버텨내지 못한다는 걸,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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